Day by Day/가끔쓰는다이어리

100212 / 눈(雪)의 매력

민군_ 2010. 2. 16. 02:05

2월 12일 금요일

연휴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미친듯이 업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반편성 업무부터(솔직히 이건 그렇게 급한건 아닐텐데..)
통지표 제출(3, 4, 6반 선생님들께서 몽땅 내게 프린트를 부탁하신 덕택에 우리반 통지표 제출이 제일 늦었음-_-;)
교평관련 연수물 제출, 교사-학부모-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통계 제출,
지난 10일에 본 도학력고사 부진문항 시험 통계 및 부진문항 분석표 제출.......

뭘 그렇게 제출하라는게 많은지 모르겠다.
내가 아직 학교 업무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논할 수 있는 짬밥이 안되는건 알지만,
가끔 우리 교장님은 쓸데없는 일을 너무 많이 만드는 것 같다.
물론 형식이라는 것이 중요하고, 일을 순서에 맞게 처리하는건 당연한 일이지만,
지나친 형식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닌데. 가끔 이건 아니다 싶다.

하지만 어쩌랴. 얄리얄리얄랴셩 얄라리얄라.

11일 목요일은 '공식적으로' 나의 모든 수업이 끝나는 날이었다.
다음주 18일이 졸업식이고 19일이 종업식인데, 아마 17일 수요일은 졸업식 예행연습으로 하루를 보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6일은 연휴 다음날이긴 하지만, 그날은 가정체험학습일.
그래서 5학년이 끝나기전에 얘네들이랑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예전에 약속했던 요리를 하기로 했다.

"자, 내일은 친구들이랑 모여서 요리를 하는 시간을 가질까 해"
"올레~"
"모둠별로 의논한 후 너희들 마~음대로 만들어봐"
"선생님"
"왜?"
"고기 구워 먹어도 되요? ㅎㅎ"
"그래 뭐 그게 정 소원이라면 니들 맘대로 해. 대신 소주 가져오면 안된다?"
"그럼 맥주는 되요?"
"죽을래? ^^^^^^^^"

그래서 12일 금요일 아침부터 이 아이들은 교실에서 열심히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온 교실이 고기스멜로 가득 찼으며, 지나가던 선생님들은 우리 교실에서 아침을 드시기 시작했다.
난 아이들이 가져다 주는 고기와,
삼겹살을 끝까지 반대하던 지원이와 아룡이네 모둠이 만든 피자를 먹으며 업무에 열중해야만 했다.
활동하는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효빈이에게 카메라를 맡겼는데,
내가 실수로 노출(Exp)을 -1.0으로 해서 줘 버린 것이다.
덕택에 애들 얼굴은 죄다 시커멓게 나오고 말았다.
업무도 많아서 짜증나 죽겠는데, 카메라까지 말썽이니(게다가 이건 내 실수라서 더더욱!) 폭발 직전이었다.

밖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영천에선 보기 드문 폭설이었다. 날도 꽤나 쌀쌀해졌다.
하지만 교실에 가득한 고기 냄새를 빼기 위해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아야만 했다.
뭐 어차피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은 아니니 다행이긴 했지만.

4시쯤 되어서, 마지막 남은 제출 서류를 부장님께 드리고 났을 무렵, A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평소에 이것저것 자주 챙겨주시는 고마운 분이시다.
이날은 오랜만에 교실에 들어오셨다.
커피 한잔을 태워 드린 후, 교실에서 서로 마주보고 자리에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A어머니는 모 반의 B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다.
오죽하면 반 편성할때 두 사람을 한 반에 넣지 말라고 할 정도일까.
(애들끼린 친한 거 같은데 엄마들끼리 사이가 안좋은 상황-_-)

그런데 B어머니가 A어머니에 대해 좀 심한 말을 퍼트리신 것 같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70% 정도가 한 아파트 단지에 모여 사는데, 그러다보니 그 아파트에서 소문 한번 제대로 잘못 퍼지면 사람 여럿 고생이다. 그리고 B어머니는... 나도 사석에서 몇 번 뵈었지만, 뭐랄까, 좋게 얘기하면 털털한 성격이신데, 그게 겉으로만 그런 것 같다. 가끔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어머니께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사람이 왜 저럴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간에 원래 절친이시던 두 분은
지난 5월부터 어떤 연유로 인해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하셨고,
B어머니가 다소 악의적으로 소문을 이리저리 흘리고 다니신 듯 하다.
그리고 여기엔 적지 못할만한, 어머니들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다.

A어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비치셨다. 솔직히 듣는 나도 좀 충격이었으니, 어머니는 오죽하셨을까.
사업 중에 가장 어려운게 사람 사업이라고, 정말 이럴땐 나도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부장님께 말씀드리니깐 어머님 두 분이랑 해당 학반 선생님이랑 모여서 술이라도 한 잔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술마시다가 서로 멱살잡는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

"선생님, 솔직히 저도 이런 이야기 선생님께 털어놓는게 참 부끄럽고 민망하기도 한데, 그래도 선생님이 이런 일이 있었고, 제 마음이 이렇다라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저 정말 이런 말도 안되는 소문들때문에 너무 힘들고, 대체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요."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쏟아놓으신 후, A 어머님은 집으로 돌아가셨고,
잠시후 교무부장 태수쌤이 나와 몇몇 선생님들을 불러서
설 선물이라며 샴푸와 비누 등등이 든 선물세트를 건네 주셨다.
지난 추석때도 태수쌤한테 받았는데. 이번엔 작게나마 뭐라도 챙겨 드릴걸 그랬나..
우리 부장님 선물도 못드렸네. (아직 이런건 참 어렵다.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표시할꼬?)

생각지도 못하게, 희진쌤도 나한테 설 선물을 하나 주셨다. 와우~
행님 쌩유베리감사해염. 결혼식때 꼭 가겠습니다. 허허허

퇴근하고, 농협ATM기에 들러 30만원가량을 뽑은 후 포항으로 향했다.
올해 설에는 직장인 아들 노릇 좀 할까 싶어서. 후후.

눈발이 점점 굵어졌다.
처음엔 비로 시작해서 그런지 길에는 별로 쌓이지 않았지만,
점차 땅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걸 하얗게 덮어버리는 것이, 눈의 매력이라면 매력이겠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도 눈으로 고이 덮였으면 좋겠다. 물론 잘 해결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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