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작은목소리

'32살 똘이장군', 누가 되살리려 하는가

민군_ 2009. 8. 20. 09:27
<똘이장군>이라는 만화가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의 영웅(!) 똘이장군이 '붉은 무리 악한 자'들을 '무쇠같은 주먹'으로 물리치는 그런 내용이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할 '반공만화영화'라는 장르를 개척하다시피 한 이 작품은, 1978년에 김청기 감독이 제작하여 발표되었으니, 올해 우리나이로 32살인 셈. 이 '32살 똘이장군'이 최근 다시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경찰 "청소년용 안보만화 15만부 배포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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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똘이장군 포스터 1978년 김청기 감독이 제작한 똘이장군 포스터. 반공만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작품이다.
ⓒ 서울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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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중심에는 지난 17일 경찰이 밝힌 '청소년용 안보만화 배포 계획'이 자리하고 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경찰청은 청소년용 만화 15만권을 10월 말까지 제작해 전국 초등학교 4~6학년, 중학교에 배포할 것이라 한다. 오, 경찰이 국가의 안보를 위해 이렇게까지 발 벗고 나서주다니! 교사의 입장에서 참으로 반가웠다(물론 그 다음 줄을 읽기 전까지 말이다).

나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 대목은 그 다음이었다. 바로 경찰이 업체에 보냈다는 '안보 홍보만화 제안 요청서'의 내용이, 지나치게 '반공'만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한 핵개발에 따라 북은 미국으로부터 선제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해졌으며, 한반도는 핵 전쟁의 희생양이 될 것."

"좌파정권은 지난 10년간 입법·사법·행정부의 요직을 반미친북세력으로 모조리 갈아치웠음. 이 여세를 몰아 대한민국의 인민공화국화 작업을 가속화하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강요해 왔음. 이를 통해 6·15 선언의 마무리인 고려연방제 통일이 목전에 당도했음."

"북한체제의 문제점,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남한에 미치는 위협, 적화통일 시 참혹한 우리의 생활상, 정부의 상생공영 정책 등을 담길 바람."

반공이 안보의 전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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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김현동 감독이 제작한 '해돌이대모험'이라는 작품의 포스터. <똘이장군> 이후 많은 반공만화물이 제작이 되었으며, 그나마 이 작품에선 북한사람들도 '사람'으로 나온다.
ⓒ 남양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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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안보만화'가 아니라 '반공만화', 즉 '2009 똘이장군 리턴즈'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 북의 핵개발로 인해 한반도가 위험해 질 것이라는 가정은 그렇다 치더라도(물론 오바마 정권에서 북을 선제타격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며칠 전엔 클린턴도 왔다 가지 않았는가), '지난 10년간 좌파정권이 집권하면서 반미친북세력이 득실거렸기 때문에 좀 있으면 대한민국이 인민공화국화 될지도 모름'이라는 대목에서는 절로 실소가 흘러나온다.

나의 안보의식이 바닥인 건지, 아니면 국민들이 모르는 고급정보를 경찰청이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체 어디봐서 대한민국이 '인민공화국화' 되어 가고 있는가? 

적어도 지난 10년간 소위 '좌파정권'이라 불리우고 있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는 높은 건물 하나 짓기 위해 비행장 활주로 각도를 바꿔버리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군사전문가들은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군사력이 많이 증대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대체 경찰청이 말하는 '안보'는 무엇이란 말인가. 단순히 반공만을 안보의 전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청소년의 안보의식을 일깨워 주기 위한 안보만화라 한다면, 적어도 국가의 안전에 관한 총체적인 내용이 넓고 쉽게 들어가야 마땅하다. 즉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에는 단지 우리와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북한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 예를 들면 산업스파이에 의해 외국으로 첨단 기술이 유출되는 것 또한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좌파', '반미', '친북' 등의 단어만을 들먹이고 있다는 것은 현 정권의 일방적인 '우측통행'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닌지.

교육만화가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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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았던 국정원의 '안보신권' 이벤트.
ⓒ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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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교육은 필요하다. 그것은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전 세계 어느 나라라도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이다. 국가의 안보에 위해되는 일은 당연히 제재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 안보에 관한 교육은 안보의식 성장에 도움을 주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무작정 '만화'를 통해 교육하겠다라는 경찰청의 자세는 다소 우려된다. 왜냐하면 위에 제시된 경찰청의 제안요청서대로 만화가 그러졌을 경우엔 결국 '일방적인 북한 체제 비판 만화'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옳다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교육이 되려면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거리를 던져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방적인 만화를 학생들이 읽는다면, 이것이 곧 '세뇌교육'아니겠는가(유인촌 장관님, 어디서 많이 들어보신 단어지요?).

창의성 교육, 함께 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일제고사다, 학원이다, 심지어 초등학교에서도 방학중에 보충수업을 하는 판이니, 이런 일방적인 소통 방식이 참 씁쓸할 따름이다. 

물론 '홍보만화'이니 보는 것은 학생들 선택이긴 하지만,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골라 보는 것과 학교에서 배포되어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아직 보는 대로 믿는 어린 학생들에게, 과연 이 만화는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편협한 이념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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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향군인회가 펴낸 반공만화책, '6·25전쟁 바로 알리기' 지난해 6월, 재향군인회가 만들어 유치원 및 초등학교에 배포한 '6·25전쟁 바로 알리기'라는 만화. 지나친 냉전 의식 강요 및 일부 왜곡된 내용으로 비판을 받았다.
ⓒ 재향군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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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이명박 정부에서 그렇게 주장하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즉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히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세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양성을 부정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주의에 가깝다(물론 난데없이 반공만화를 배포하겠다는 것이, 1960년대 반공을 국시로 하며 정권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획득하려 했던 그 누구와 닮긴 했지만 말이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작은 사회'라 불리는 학교에서부터 민주적인 자세, 민주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 그래서 폭 넓은 시각, 폭 넓은 교육이 요구되는 것이다. 특히 어릴 수록 더더욱. 혹자는 '어린 아이들이 뭘 알겠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소 판단착오가 있더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 나가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조차 존재할 틈을 주지 않는 교육 정책들이 과연 옳은 것일까. 더군다나 반공만화라니. 

많은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그래서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자라나게 될까봐. 다른 의견을 틀렸다고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치우친' 주장만이 옳은 것인냥 귀를 막고 홍보하는 이 나라에서, 과연 '교육'이란 대체 무엇일까. 아마 당분간은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1) 이 기사를 막 쓰기 시작할 즈음,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아버지이며 남북화합을 위해 평생 헌신하셨던 큰 별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올해 왜 이렇게 뒤숭숭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2) 혹시라도 댓글에 '전교조'니 '좌빨' 운운하는 글이 올라올까 하여 소심한 마음에 먼저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전 무소속 교사이며, 균형잡힌 토론 교육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좌건 우건 간에, 원칙적으로 편협한 시각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