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by Day/아침글쓰기 22

토론

‘띵커벨’이라는 수업 도구를 이용하여 토론 수업을 했다. 첫 시간인 만큼 가벼운 주제로 진행을 했는데, 스마트기기를 활용해서 하는 수업이라 그런지 모두 잘 참여해 주었다. 자신의 주장을 근거와 함께 잘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중에 혹시 우리 반 학생 중에 국회의원이 나온다면, 지금 의원들처럼 막 싸우지 말고, 서로를 존중하며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 줬으면 좋겠다. 2019. 12. 11.(수)

존중

말로만 ‘존중’하긴 쉽다. 하지만 실천은 어렵다. 얼마 전 본 영상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존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듯, 나 또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함께 더불어 이곳에 살기에,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존중이다. 나와 다르다고 싫어하는 티 내기 보단, 그 사람의 본 모습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2019. 12. 9.(월)

손흥민

밤에 축구 경기를 보고 있는데, 손흥민 선수가 정말 멋진 골을 넣었다. 경기장 끝에서 끝까지 약 70m 정도를 혼자 드리블하며 상대편 선수 7~8명을 혼자 따돌린 후 침착하게 골을 넣었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모여 있는 영국 축구 리그에서 멋진 골을 넣는 손흥민 선수가 정말 멋지다. 그뿐만 아니라 항상 ‘대한민국’을 알리고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그의 태도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019. 12. 9.(월)

첫눈

며칠 전 첫눈이 내리긴 했는데, 쌓이는 눈이 아니라서 좀 아쉬웠다. 2년 전 쌍정초에서 근무했을 때 기억이 난다. 운동장에서 신나게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했었다. 군대에 있을 땐 눈 내리는 날은 정말 힘들고 싫은 날 중 하나였다.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처럼 눈을 치웠던 기억이 난다. 지난 4월에 군대 간 옆 반 오원재 선생님은 지금 열심히 눈 치우고 있겠구나.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2019. 12. 4.(수)

김승규

김승규는 프로축구 울산 현대의 골키퍼다. 어제 포항과 울산의 K리그 축구 경기가 있었다. 나는 고향 팀인 포항을 응원했다. 경기 막판, 김승규의 결정적인 실수로 포항이 한 골을 넣었다. 기쁘면서도, 중계 화면에 잡힌 김승규의 축 처진 모습이 너무 짠했다. 경기 내내 많은 선방을 했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 프로 선수의 세계는 참 냉정한 것 같다. 만약 내가 울산 현대 팬이었다면 김승규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2019. 12. 2.(월)

낙엽

잡월드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저 멀리 붉게 물든 길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뭇가지에 붙어 있던 낙엽들이었다. 나무와 함께하던 가을이 어느덧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길바닥에 내려앉은 낙엽에서, 아침에 차 유리창에 하얗게 껴 있는 성에에서, 가을의 끝과 겨울의 시작을 느끼는 요즘이다. 2019. 11. 27.(수)

피구

초등학생 시절 난 키도 작고 힘도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피구를 할 때, 한 손으로 빠르고 강하게 공을 던지는 친구들을 보면 참 부러웠다. 내가 던지는 공은 약했고, 상대편이 쉽게 잡았다. 어느 순간 공을 던지기가 싫어졌다.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피구가 재미없어졌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이 내게 힘을 줬다. 못 던져도 괜찮다고 응원해 준 친구들 덕분에 다시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이 참 보고 싶다. 2019. 11. 15.(금)

수능

내일은 수능이다. 2004년 11월 17일, 친구 아버지의 차를 타고 시험을 보러 갔다. 그날 아침 집을 나설 때 코끝에 닿았던 차가운 새벽 공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수능 시험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마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내일 시험을 보는 수험생들도 아마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혹시 주변에 시험 보는 선배들이 있다면, 다른 말 대신 ‘그동안 수고했어’라고 말해 주면 좋겠다. 2019. 11. 13.(수)

빼빼로 데이

내가 어릴 적엔 빼빼로 데이 말고도 칸쵸 데이, 에이스 데이 등등 온갖 ‘데이’들이 가득했다. 누가 정했는지도 모르는 그 ‘데이’엔, 과자를 많이 받은 친구들의 의기양양한 모습과, 거의 받지 못했거나 줄 사람도 없었던 친구들의 의기소침한 모습이 대비되었었다. 과자 회사의 상술에 우리가 왜 상처받았던 걸까. 사실 과자보다 더 소중한 건 우리 자신인데 말이다. 2019. 11.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