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31; 나리타 - 코펜하겐 - 런던
아침 6시, 눈이 떠진다. 군대에서도 요즘 이 시간엔 잘 못일어나겠던데.. 아 여긴 외국이라서 시차적응중...일리가 없잖아! 그러던 중 이 이른 기상의 원인은 바뀐 잠자리 및 커튼을 치지 않은 창문으로 그대로 쏟아지고 있는 일본의 따가운 아침햇살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기온은 그리 높지 않지만, 은근 햇살이 따갑다. 그래도 기분은 푹 잔거마냥 상쾌하다. 어쨌거나 잠은 더 안오고, 그냥 일찍 일어난 김에 주변 산책이나 할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잘못보면 그냥 시골의 흔한 2층집같이 생긴 나리타 에어포트 호스텔
어젠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아침에 보니 이 숙소는 '나리타 에어포트 호스텔'이라는 이름과 안어울리게, 정말 자그마하다. 나중에 숙소 리뷰라도 써야지. 처음 호스텔부커스와 같은 사이트에서 예약할때, 이 숙소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어서 결정하기 힘들었었다. 그래도 정말 다른 호스텔에 비해 저렴하고, 공항과도 가깝고, 픽업도 된다고 해서 예약했다. 나름 괜찮은 숙소다^^ 앞에 보이는 파란색 차가 첫날 보았던 '파란색 티코'다.
길가에 곱게 핀 나리꽃
이들에겐 흔한 풍경이겠지만, 낯선 여행객에겐 신기한 간판:-)
흙 색깔도 우리나라와 달라 보인다. 무엇을 심으려는 걸까?
공항 근처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호스텔 옆에선 어떤 일본인 농부가 밭에 씨앗을 뿌리고 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크게 복잡한 건물도 길도 없어 길을 잃어버리진 않을 것 같기에, 발길 닿는대로 주변을 조금 걸어보기로 했다. 7월 말인데도 뭔가를 새로 심을 모양인지, 주변의 땅들은 고르게 정리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보이는 일본어 간판들에게서 여기가 정말 일본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곳 사람들에겐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겠지만, 바다 건너 온 여행자에겐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하룻밤 묵었던 내 자리. 옆자리엔 캐나디언이 자고 있었다
30여분 정도 걷다가 다시 호스텔로 돌아왔다. 시계는 거의 아침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파란 티코 카레이서 호스텔 사장 아저씨-_-가 8시 반에 공항으로 태워주겠다고 하셨다. 아리가또고자이마스! 간단히 씻고 짐을 정리하며 옆자리에 외국인과 인사를 했다. 이름은 Kevin Mooney, 캐나다에서 온 서른한살 형님이다. 전 여자친구가 서강대 다니던 한국인이랜다. 같이 호주여행 했던 사진을 보여주며, 나보고도 여자친구와 함께 호주에 꼭 가보라고 했다. 캥거루 고기가 맛있다던데, 나더러 캥거루 닮았다고 하던 곰누나가 생각나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프다. 캥캥! 아무튼 조만간 호주에도 가야겠다.. 캠핑카 빌려서. 우히힛!
케빈과 되도 않는 영어로 어째저째 얘기를 나눴다. 나는 원래 엘레멘터리스쿨티처지만 코리안 맨들은 트웨니 이얼스 올드가 오버되면 무조건 밀리터리 서비스에 어바웃 투 이얼스동안 가야 한다고 설명을 했다. 지금 군대에서 뭐하고 있냐고 묻길래 리퍼블릭오브코리아에어포스에서 베리 임폴턴트한 업무를 한다고 했다.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 to the 재... 자기 이름을 한글로 어떻게 쓰냐길래 공책에 써주니, 받아쓰기 하는 초등학생마냥 열심히 따라쓴다.
Hi, Kevin!
호스텔 앞에서. with 태은, Kevin, 그리고 나!
시간이 되어 호스텔을 나섰다. 아저씨는 어제 왔던 길이 아닌, 새로운 지름길로 차를 겁내 빨리 몰았다. 티코에 부스터 달린 줄 알았다. 곧 드리프트를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아침부터 스릴 넘치는구만ㅋ
공항 앞에서. 동네 아저씨 필 충만한 호스텔 사장(!)님과 케빈, 태은.
날씨 좋다^^
순식간에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였다. 일본여행중인 케빈은 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도쿄로 떠났다. 자, 이제부터 오늘의 일정 시작! 오늘은 11시 40분 스칸디나비아항공 SK984기를 타고 코펜하겐으로 가서, 다시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로 환승하는 일정이다. 체크인 카운터를 찾아서 어제 발권받은 보딩패스를 주니, 다시 스칸디나비아항공 보딩패스로 교환해 줬다. 보딩패스도 받았으니, 이제 아침을 먹어볼까?
요렇게 생긴 스칸디나비아항공 보딩패스
오늘 아침은 맛난 서브웨이 샌드위치
공항을 둘러보니 저 멀리 그나마 친숙한 서브웨이가 보인다. 근데 샌드위치 이름들이 왜 이리 복잡한지. 하긴 이럴땐 메뉴판을 손으로 가리키며 "디스 원 플리즈!"면 간단히 해결 될 문제이긴 하다. 근데 이 점원 아주머니, 왜 자꾸 나한테 일본말로 말을 거는 거지? 와따시와 일본어 못하므니다. 일본 사람이 아니므니다! 사람이 아니므니다! 음료는 한국에서는 듣도보도못한 메론소다를 주문했다. 그 흔한 스프라이트가 없었고, 쓸데없는 모험심도 발동했기 때문이다. 맛은 딱 메론소다 맛이었는데 생각보단 맛있었다.
역시 셀카 조명은 화장실이 甲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공항 구경을 조금 하다가,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여권 보여주고 보안검색대 통과하고 출국심사대에서 도장받고... 어제 인천에서 한번 했더니 그리 어렵진 않다. 가방에 든 노트북도 미리 밖으로 빼놓는 센스! 면세점에서 살 물건도 없고 하니, 그냥 33번 게이트로 열심히 걸어가서 사람구경 비행기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기도 와이파이는 빵빵 터지는구만:-)
열려라, 33번 게이트!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에 블루 포인트가 가미되어 모던한 필을 주...긴 누가 뭘 준다고 그래?
어느덧 11시, 게이트가 열렸다.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 일본에서 출발하는거라 그런지, 승무원들 중 일본인들도 여럿 보인다. 하지만 대다수는 (아마도) 북유럽 국가사람들이겠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이 어느정도 '통일되어있는' 느낌이라면, 이곳 승무원들은 뭔가 캐릭터가 다양해 보인다. 젊은 남승무원부터 중년의 여승무원까지. 다들 친절하고 상냥하다 :-)
푸처핸접중인 포리너 탑승객 누님
조금 구려(?) 보이는 내부 모니터
처음 타보는 외국항공사인 스칸디나비아 항공. 내 자리는 역시나 날개가 보이는 창가자리였는데, 2-4-2의 의자배열인지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부는 깔끔했으며, 전체적으로 블루톤의 인테리어에 레드 컬러의 기내담요로 강렬한 컨트라스트를... 됐다 고만하자. 여기도 역시 시트마다 모니터가 달려있었는데 화질도 그렇고 컨텐츠도 그렇고 조금 올드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창가자리라 안그래도 소음이 좀 심한데, 이 상황에서 어찌 자막없는 외국영화를 볼 수 있단 말이오 ㅋㅋ
잠시 후 비행기는 나리타 공항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 올랐다. 안녕 일본, 독도는 우리땅^^
출발 전 셀카 한 장. 내 옆엔 일본인 아주머니가 앉아계셨다
오른쪽에 후지산으로 추정되는 산도 살짝 보인다
나리타 국제공항 스카이 뷰!
건물과 산, 들과 강이 점점 작아진다 싶더니 어느새 비행기는 구름 위로 올라섰다. 곧 안전벨트 등이 꺼지자, 조용했던 기내는 다소 분주해졌다. 승무원들이 음료수를 따라주기 시작한다. 이어폰도 받았다. 조금 있으니 점심 기내식도 준다. 어떤 기내식이 나올지, 무지하게 기대가 되었다. 아침에 먹은 샌드위치는 이미 소화된지 오래다.
시원하게 캔맥 한잔!
잘먹겠습니다!
칼스버그 한캔 따서 홀짝거리고 있으니 기내식이 나왔다. 빵도 있고 밥도 있고 샐러드도 있고 치즈케잌도 있고. 일본 출발이라 그런지 나름 동서양의 조화(?)를 생각한건가 싶기도 하다. 밥 옆엔 닭가슴살을 간장 소스에 졸인 것 같은 그런 음식이었는데, 옆에 앉은 일본 아주머니가 후추랑 소금을 엄청 뿌려 먹길래 따라해봤다. 나름 짭짤하니 괜찮았지만 내 안의 나트륨은 어쩌지 ㅋㅋ 그래도 뭐든지 잘먹는 식성이라 요것도 남김없이 싹 다 비웠다.
배고픔이 해결되고 나니 창 밖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뛰어들어도 다시 튕겨오를 것 같다
여기저기 솟아오른 구름빵들
발 아래는 온통 하얀 구름이다. 비행기는 흔들림없이 파란 하늘을 질주하고 있다. 파란 하늘빛과 비행기 날개 색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슬슬 지겹다. 너무 멀다. 시간이 많이 흐른것 같은데도 아직 아홉시간 넘게 남았다. 총 비행시간은 11시간 반 정도... 흐미. 밥 먹으니 잠이 솔솔 오긴 하는데, 왠지 지금 잠들면 시차적응하기 힘들 것 같아서 안자려고 노력했다. 근데 뭐하지?
니뽄스타일 삼각김밥
따 라따 따 라따 따 닷따 따 랏따 따 따라 따따 따 라 따
슬슬 허리도 아파오고, 다리도 조금씩 저릿저릿하다. 근데 옆에 앉은 일본인 아주머니는 곯아떨어지셔서 일어날 생각을 안하신다. ㅠㅠ 뭐 하는 수 없이 진득허니 앉아서 놀았다. 간식으로 나온 삼각김밥 먹으며, 에펠탑과 센강이 표지에 그려진 연습장에 여행일지도 쓰고, 의자에 달려있는 모니터로 테트리스도 했다. 이상하게 내 자리는 다른 게임들이 도통 실행되질 않는다. 내 앞에 앉은 한국인은 열심히 스도쿠에 열중하고 있다. 승무원들은 그러는 중에도 열심히 커피나 녹차를 들고 다니며 승객들에게 따라주고 있다. 이모뻘쯤 되어 보이는 승무원이 내 앞 한국인들에게 말을 건다.
"재패니즈?"
"노노 코리안임"
"오 코리아구나 쏴리. 근데 코리아는 너네 언어로 뭐라고 함?"
"'한국'이라고 해."
"한쿡? 환국? 오키오키. 아 뭐마실래? 커피? 그린티?"
잠시후, 그 승무원이 환한 미소로 나에게도 말을 걸었다. "한쿡~?"
이건 저녁일까 오후 간식일까.. 점점 애매해진다.
좀있자니 또다시 기내가 분주해진다. 다시 기내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은 대충 저녁먹을 시간 만큼 흐르긴 한 것 같은데,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는 시간으로 따지면 오후 간식 정도 될 듯 했다. 끊임없이 사육당하는 기분이다. 뭐 그런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샐러드와 빵으로 이루어진 나름 간촐한(?) 식단이다.
옆자리 일본 아주머니는 또 다시 후추와 소금을 샐러드에 쏟아 부었다. 푸근한 인상(+뱃살)의 일본 아주머니를 손가락으로 콕 찌르면 나트륨이 나오는 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요것도 남김없이 싹싹 긁었다. 먹고 나니 또 잠이 솔솔 온다. 그래도 속으로 시차적응!을 세 번 외치며 안잤다. 안잤다. 안 잤....
잠들기 좋은 기내 조명 ㅋㅋ
뭐 조금 졸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정신은 챙기고 있었다. 모니터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니 그나마 익숙한 '반지의 제왕'이 있어서 시청하였다. 당연히 무슨 말인지는... 모른다 ㅋㅋ
점점 땅이 가까워 진다. 풍력발전용 풍차들도 보인다.
드디어 코펜하겐에 착륙!
땅이 조금씩 가까워진다 싶더니, 덴마크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윽고 코펜하겐 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 드디어 유럽땅을 밟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ㅠㅠ 도착 시각은 오후 4시. 아침 11시 40분에 출발했는데 오후 네시...ㅋㅋㅋ 이게 말로만 듣던 시차라는 거구나. 열한시간을 비행했는데 오후 네시라니. 덕분에 정신은 살짝 비몽사몽이지만, 환승 연결통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이상하게도(?), 안내판에 일본어 또한 비중있게 자리잡고 있다. 일본 관광객이 그렇게 많은건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일본어를 병기할 정도로인가 싶기도 하고... 뭐 그랬다.
같은 비행기를 탔으나 자리가 멀어 결과적으로 근 반나절만에 다시 태은이를 만났다. 태은이는 여기서 프랑크푸르트로, 그리고 난 런던으로 간다. 짧지만 즐거웠던 인연, 안녕~
나중에 한국어도 뙇!! 적혀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 일찍 게이트로 걸어갔다. 오늘의 남은 일정은 SK1507, 코펜하겐을 18:10분에 출발하여 19:10분에 런던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뭐 반나절 동안 비행기 탔는데 요정도야! 하는 생각으로 게이트에 도착했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인지 아직 게이트는 열려 있지 않았고, 게이트 앞엔 나랑 똑같은 빈폴 크로스백을 맨, 딱 봐도 한국인일 것 같은 동양인이 한 명 앉아 있었다. 슬쩍 여권을 보니 역시나 대한민국이다. 스키장 리프트를 탄 김태원 모드로 말을 걸었다.
"혼자 여행가세요?"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총알같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제 오늘 만난 사람들은 이렇게 죄다 밝고 말이 많다 ㅋㅋ 덕분에 덜 심심하고 좋네. 이름은 지현. 핀란드로 유학가는 길인데 그 전에 좀 일찍 와서 유럽 여행 하러 가는 길이란다. 부러워라... 나는 대학교때 뭐하며 살았지 싶다. 뭐 나름 열심히 의미부여하며 살긴 했다만...ㅠㅠ
비행기탔다! 가자 런던으로!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유럽 내 짧은 거리라 그런지, 아까 탔던 비행기보단 조금 작은 기종이다. 내 자리는 복도쪽이다.
자막이 필요없는 톰과 제리!
잠시 후 승무원 아저씨들이 카트 끌고 지나가길래 코카콜라 하나 달랬더니 컵에 레몬까지 넣어서 준다. 당연 무료겠지 했는데, 유료다-_- 난감하도다... 하지만 난 국제적으로 시크한 남자니깐 원래 유료인걸 알고 있었던 것 처럼 쿨하게 돈을 냈다. 속마음이야 뭐 아까워 죽을 뻔 했지만. 머리위에 달려있는 작은 모니터에선 자막이 필요없는 만화영화, 톰과 제리가 절찬리에 상영중이다. 오랜만에 투니버스 보는 기분으로 앉아 왔다. 톰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모든 괴롭힘받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만의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출입국카드 작성중!
런던 도착 30분 전. 기내에서 출입국 카드를 나눠 주었다. 미리 아이팟에 출입국카드 예시가 담긴 어플을 받아 놓았기에, 아이팟을 켜서 어플을 실행했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던 포리너 아저씨가 자꾸 참견을 한다. 여긴 이렇게 적고 저긴 이렇게 적으면 된댄다. 자기는 런던이 직장이라 이거 수없이 써 보았다면서... 문제는 그 아저씨 영어 발음이 알아듣기 힘든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미국 뉴스 앵커처럼 말해도 못알아 듣는 판인데... 어쨌거나 땡큐 포 헬핑 미! 출입국 카드를 다 쓰고 주변을 둘러 보는데, 뒤에서 한국인'들'이 좀 보여달랜다.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면서.
비행기는 부드럽게 런던 히드로 공항에 착륙하였다. 드디어 런던이구나! 얼른 출입국 심사 받고 나가고 싶은 마음 가득이다. 그나저나 여행 전 유랑 카페에서, 히드로 공항 출입국 심사가 까다롭다는 말을 듣긴 했으나 그다지 별 신경 안쓰고 있던 나 였다. 근데 옆에서 지현이는 자꾸만 뭔가를 중얼중얼 거리고 있다. 출입국 심사 인터뷰 연습이랜다. 허어. 사람 불안해지게 왜이러시나요. 하긴 나도 '인도계 여자'가 있는 창구로는 가지 말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말이다.
드디어 나의 출입국 심사 차례.
"헬로, 영국엔 왜 왔어?"
"올림픽 보러 옴."
"무슨 경기 볼건데?"
"축구랑, (활 당기는 시늉을 하며) 양궁이랑 이런것들. 한국팀 나오는거 볼거야."
"며칠동안 있을거야?"
"열흘간."
"오케이. 즐거운 여행~"
뭐 별 거 없네, 싶어서 지현이 쪽을 보니 쓰고 있던 선글라스와 모자가 문제였나보다. 다 벗어들고 뭔가 열심히 설명중이네.
여기가 런던입니다요다?
진짜진짜 드디어 드디어 런던이다! 오랜 비행에 얼굴엔 개기름이 좔좔 흘렀지만, 설레는 마음이 모든 것을 덮었다. 오예오예. 언더그라운드 표시를 따라 걸어가다, 교통카드(오이스터 카드) 발매기가 있길래 20파운드를 충전하여 구입했다. 음 그런데 실수로 두 장 구입했다. ㅋㅋ 다행히 지현이도 필요하다고 해서 그대로 팔았다.
훈남 여행객 아저씨
걷다보니 히드로 터미널1,2,3(Heathrow Terminals 1,2,3)역이다. 파란색 피카딜리라인 제일 끝에 자리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얼스코트(Earl's Court)역으로 간 후, 초록색 디스트릭트 라인으로 갈아타고 하이스트리트켄싱턴(High Street Kensington)역으로 가서 호스텔까지 걸어갈 계획이다.
기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노란선 안쪽에서 기다려 주세요~
생각보다 좁은 기차 안
드디어 지하철이 들어왔다. 몇 번이나 행선지를 확인 한 후, 지하철에 올라 탔다. 깔끔한 디자인에, 생각보다 좁은 실내다. 덩치 큰 사람들이 캐리어 가방 끌고 앉으면 꽤 좁을 듯 하다. 그래도 나름 세련된 생김새다.
창 밖을 보라
창 밖으로 런던의 작은 마을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모습이 영화에서나 보던 모습과 같아서, 마냥 눈이 즐겁다. 어디 시골에서 처음 서울로 수학여행온 학생들마냥, 창 밖 풍경에서 눈을 뗄 줄 모르는 두 명의 한국인이었다.
여기는 얼스코트(Earl's Court)역!
얼스코트역에 도착했다. 사진에선 잘 보이지 않지만, 여기저기 올림픽 기운이 물씬 넘친다. 다름 아닌 이 역 근처 얼스코트(Earl's court, 1937년 개설된 런던의 전시회장 같은 곳)에서도 올림픽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지현양과의 짧은 인연도 요걸로 안녕! 여행 잘하고 핀란드 가서 자일리톨도 많이 씹고 그래 휘바휘바♬
조금 헤매다 근처 어슬렁거리던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환승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다시 기차가 들어왔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여기도 노선별로 기차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2층버스다! 2층버스가 나타났다!
하이스트리트켄싱턴역까지는 금방이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낑낑거리며 들고 역을 나섰다. 나서자마자 빨간색 2층버스가 뙇! 하고 지나간다. 여기 저기 요기 조기 둘러봐도 다 빨간 2층버스다. 아 런던은 죄다 빨간색 2층버스구나... 빨간 2층버스가 유명하다길래 난 또 몇대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거구나... 그랬구나... 이제야 알았다...
그나저나 해가 점점 지고 있다. 지금 시각은 밤 9시가 넘어가는 상황. 해가 늦게 지긴 지는구나. 일단 호스텔을 찾아 가기 위해, 인쇄해온 지도를 펼쳐 들었다. 그런데 지도가 눈에 안 들어 온다. 런던의 거리를 걷는다는게 너무 신나서일까. 신나게 까불거리며 걸어가다 꺾어들어가야 할 골목길을 지나쳤다-_- 더불어 길도 헷갈리고 있다. 뭐 어쩌겠어. 물어봐야지. 마침 앞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있는 근처 식당 아저씨가 보였다.
"익스큐즈미, 홀랜드 파크가 어딘가요?"
"바로 옆이 홀랜드 파크임. 근데 혹시 호스텔 찾나요?"
"빙고! ㅋㅋㅋ"
"아 그건 저 홀랜드파크 옆으로 쭉 따라가다보면 금방 나와요."
5분후.
쭉 따라가면 금방 나온다던 호스텔은 도통 나올 생각을 안한다. 이 길이 맞는 걸까 불안해하며 열심히 걸었다. 그러다 우연히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음? 자세히 안 보면 지나칠 법한 샛길에 호스텔 표시가 있다. 휴 드디어 찾았도다!
어둠 속에서 발견한 YHA HOLLAND PARK!
호스텔 1층. 여기서 체크인을 하고 방 키를 받았다.
앞으로 일주일정도 머물 YHA Holland park. 공식 유스라서, 유스호스텔 회원증이 있으면 할인도 해 준다. 21인 도미터리를 예약해서 좀 정신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늑한 방이었다. 어차피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 늦게 들어올 거니 상관은 없지만. 아무튼 1층에서 체크인을 하고 돌아서는데 뒤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동양인 여자 한 분이 서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서로 "안녕하세요" 하며 꾸벅 인사를 했는데... 읭?
"한국인이세↘요↗?"
이렇게 또 인연을 맺게 된 친구, 형주.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혼자 영국 여행을 왔다고 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호스텔을 못찾아서 한참 헤매다가 겨우 겨우 찾아와서 그렇게 지쳐 있었댄다. 휴, 호스텔 하나가 여럿 힘들게 하네!
자물쇠 하나와 무선 인터넷 사용을 위한 카드를 구입한 후, 방에 들어와 짐을 풀었다. 위 아래 침대에 누워있던 사람들과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12시.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할텐데, 일어날 수 있겠지? 그렇게 런던에서의 첫날 밤이 지나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유럽 여행기.
여행 3개월만에 이제서야 런던에 도착함.
과연 다음편은 언제 올라올 것인가?
20120730 - 20120818 민군의 유럽여행기 ⓒ 김석민
Nikon D70s + Tamron 18-20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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