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때는 천주교가 우리나라로 들어오던 19세기 말, 으리으리한 기와집 문을 열고 한 사내가 들어선다.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사내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어느 방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고운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숨이 멎을 듯한 정적이 흐른다. 그 정적을 깨고,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배용준에게, 이미숙이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띠며 묻는다.
“···통하였느냐?”
#2.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07년, 천주교뿐만 아니라 알 수 없는 갖가지 종교들이 난립하고 있는 이 땅의 남쪽 바다를 건너면 희망의 섬 제주도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2007년 11월 10일. 이곳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사석로 51번지에 위치한 제주교육대학교. 무슨 일인지 4층 회의실은 학생들과 교수들의 신경전으로 시퍼런 칼날이 서 있다. 회의실밖엔 학생들과 동문들이, 회의실 안에는 교수와 교직원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 숨이 멎기는커녕 날아가던 새도 시끄러워 도망갈 판에, 김정기 총장이 등장하여 날린 한마디는 날아가던 새의 날갯죽지를 꺾어 버렸다. “너희들 뭐하냐? 한참 자고 있는데······.”
단잠에서 깨어나 기분이 안 좋으신 우리의 총장님, 항의하는 동문에게 “꺼져!”라고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시며 건강한 목청을 자랑하시던 우리의 총장님, 아마 뒤에선 교수들에게 작게 이렇게 속삭였겠지.
“···통합하였느냐?”
교육계에 튄 통폐합의 불씨
제주교대 사태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은 근 한 달이 넘는 기간을 무기한 학사거부라는 카드를 꺼내들었고, 부총학생회장과 대외협력국장은 삭발을 했다. 교대협 중앙위, 즉 각 교육대학 총학생회장단은 교육부 앞에서 손끝에 스스로 피를 내어 혈서를 썼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전교조·전국교육대학교교수협의회 등 수많은 교원단체들이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더니 11월 22일 교육부에서는―아마도 교육대학교 역사상 처음으로―학생과 교사와 교수가 함께 모여 투쟁을 진행했다.
비단 올해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작년 경인교대 인천캠퍼스와 한경대, 그리고 평택재활복지대의 통폐합이 추진되었을 때도 경인교대 학우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경인교대 캠퍼스의 아스팔트 위엔 경인교대 총학생회장의 머리카락이 떨어져 내렸고, 학우들은 뜨거운 눈물을 길 위로 떨어뜨렸다(참고로 당시 총학생회장은 여자 분이셨다).
도대체 뭐가 그들을 또 다시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내몰고 있단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 이 무시무시한 통폐합이라는 것의 진짜 실체는 무엇이기에 이 많은 사람들이 들끓고 있는 것일까. 일단 말 그대로 놓고 보자면 말 그대로 두 학교를 합하는 것이다. 곧 통폐합이 되면 제주교대는 더 이상 제주교대가 아니라, ‘제주대학교 초등교육과’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문제는 바로 ‘WHY?’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넷 신문 기사를 하나 가져와 보겠다.
저출산따른 정원감소 불가피
정부가 제주대, 제주교대 통폐합을 시작으로 전국 11곳 국립 교대를 인근 국립대의 한 단과대로 통폐합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한다.
곽창신 교육인적자원부 대학구조개혁추진단장은 25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올 하반기 제주대, 제주교대 통폐합을 정부 차원에서 밀어붙여 꼭 관철시키겠다"며 "이를 시작으로 10년 안에 전국 교대, 국립대 통폐합 과제를 완수하겠다"고 말했다(후략).
(2006.08.25 헤럴드경제)
위 기사를 보아하니, 올해 기사도 아니고, 2006년 여름 기사이다. 제주교대와 제주대의 통폐합을 시작으로, 전국 11개 교대를 아주 그냥 통폐합시켜버리겠다는 야망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 이유라고 밝힌 것이, 바로 ‘저출산’이란다. 초등학령기 아동수가 줄어들어서 교대를 통폐합해야겠다고 그런다. 그 ‘저출산’이라는 핑계로 교원임용TO
도 확 줄이신 분들이, 그걸 핑계로 교대까지 통폐합 하시겠다라?
교육부는 진짜 이유를 밝혀야 한다
핑계도 제대로 대야 핑계지, 출산율이 줄면 교대 정원을 줄이면 될 것 아닌가. 실제로 작년부터 교대협 및 여러 단체의 요구에 의해 교대 정원이 점차 줄어가고 있다. 물론 이것은 출산율 때문이 아닌, 목적교대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긴 하지만 일단 그렇다 치자.
물론 교육부는 여러 가지 근거를 들고 있다. 바로 4년제 대학교로 분류되어 있는 교대를 지역 대학교에 흡수시킴으로서 종합대 안에서 종합적인 교육을 받게 하겠다, 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 의의때문인가?
교육부가 저지르고 있는 최대의 실수는 ‘솔직하지 못하다’이다. 한 마디로 정리해서, 교육부가 이 통폐합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돈이 안 되는 학교’라는 인식이 강하게 깔려 있는 데에서 출발한다.
현재 예비교사 1인을 양성하는데 드는 국가 보조금은 연간 약 600만 원 정도라는 통계수치가 나와 있다. 600만원이면 만리장성 짜장면이 2000그릇이니 실로 작은 돈은 아니다. 그런데 기업으로부터 투자유치 받는 것도 아니고, 등록금은 싸고, 정부 지원금은 많이 들어가니, 우리 경제 논리 좋아하는 윗사람들에게 미운털이 박힐 수밖에. 만일 국립대로 통폐합될 경우 구 교대에 지원되는 예산은 현재 수준의 10분의 1에서 5분의 1정도로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돈 없어서 신규교사도 안 뽑으려 하는 교육부에게, 이러한 통폐합은 초기에 통폐합 지원금을 무릎팍도사마냥 팍팍 때려도 결코 손해 안 보는, 남는 장사인 셈이다.
교육에 희망의 촛불을 밝히자. 20061115(c)민군:)
통폐합 후, 무엇이 문제인가?
가정해보자. 제주대와 제주교대가 통폐합되어 제주대에 초등교육과가 생기고, 경북대와 대구교대가 통폐합되어 경북대에 초등교육과 생기고, 부산대와 부산교대가 통폐합되어 부산대에 초등교육과가 생겼다고 치자.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요플레 두 개 챙겨서 가는 사람 보면 세 개 챙겨서 가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인데, 돈 되고 인기 보장되는 초등교육과가 일반 국립대에 덜커덩, 생긴다면? 자연히 다른 국립대에서 난리 부르스를 출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초등교육과가 생길 것이고, 어느 시기쯤 되면 일반 사립대에서도 어디서 주워들은 평등권 어쩌고 저쩌고를 들먹이며 헌법재판소에 판결을 요구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례가 없으면 몰라도 사립대에서 유일하게 이화여대엔 초등교육과가 있지 않은가. 그렇게 된다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지금의 사범대를 보면 그 결과를 알 수 있지 않은가.
또 다른 문제는 복수전공생이다. 전국에서 초등교육을 복수전공하여 이수할 수 있는 학교가 딱 두 군데 있는데, 바로 이화여대와 우리 학교이다. 그래도 우리학교는 그 과 정원의 50%정도로 제한이나마 해놨지, 이화여대는 딱히 인원제한이 없다고 들었고, (물론 학교별 편차는 있겠지만)보통 일단 다른 대학교에서 복수전공생 비율을 과 정원의 최대 300%정도로 한다고 한다. 만약 제주대-제주교대 통폐합을 시작으로 전국 교대들이 통폐합이 되고, 복수전공제도가 생겼을 때를 가정해 본다면, 지금의 임용고사 경쟁률은 ‘통과의례’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 또 모르는 일이다. ‘교직이수’라는 것이 생기게 될지(뭐 앞으론 교육전문대학원을 세우겠다고 하고 있긴 하지만). 그리고 그 폐혜는 중등의 사례를 통해서 확인하지 않았는가.
결국 지금의 목적성을 담보로 정체성을 지켜왔던 초등교원양성기관인 교육대학교는 그 본질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제주대-제주교대의 통폐합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새삼스레 강조하는 말이지만, 교육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설계되어야 그 빛을 발한다. 지금의 행정적, 재정적 부담을 피하기 위한 통폐합 정책이 정말 초등교육에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하는가?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 없고, 난 카메라를 잃어버릴지언정 내다버릴 순 없고, 국가는 공교육을 버릴 순 없다. 아니, 버려서는 안 된다.
신자유주의 광풍이 3월 황사만큼이나 심하게 불어 닥치더라도, 초등교육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이 통폐합은 단지 교육부의 거대한 계획 중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필히 명심해야 한다. 초등학교선생님의 꿈, 당신이라면 4년 동안 교원양성을 위해 특화된 대학교에서 키우고 싶은가, 아니면 일반 종합대학교에서 다른 이들과 치열하게 눈치를 보고 경쟁을 하면서 키우고 싶은가. 그 해답은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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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육과 소식지, '가위바위보' 겨울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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