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날 1편 요약 남자배드민턴 경기 봄 → 빅벤&런던아이 어슬렁어슬렁 → 양궁보러 가자!
넷째날 2편 일정 (애비로드) -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 - 라이시엄 극장 - 템즈강 야경
혼자 걷다보면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이름난 여러 곳들을 지나치게 된다. 특히 런던과 같은 유명한 관광지는, 눈을 돌릴 때 마다 예전 TV나 책 속에서나 보았던 유명한 건축물들이 툭툭 튀어나오곤 한다. 이런 것들 또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계획하지 않았던 마주침. 이날 오후가 그랬다.
양궁 경기가 열리는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Lord's Cricket Ground)에 가기 위해서는,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역에서 회색 주빌리 라인(Jubilee line)을 타고 세인트 존스 우드(St. John's Wood)역에서 내려야 했다. 환승 안하니 편하군 ^^ 그리 먼 거리는 아니라, 약 10여분정도 지나 열차에서 내렸다. 생각보단 자그마한 역이였는데, 역 바로 옆엔 비틀즈(Beatles)의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뭐 가게 이름은 비틀즈 커피 샵이긴 했지만. 잠깐 구경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비틀즈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I wanna hold your hand~♬ Yesterday~♪ Yellow submarine~♬
세인트 존스 우드 역 내 비틀즈 커피 샵
그러다 시계를 보니 경기 시간이 거의 다되어 있었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핑크핑크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고 생각했는데, 어인 일인지 표지판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마 길을 잘못 든 듯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이 사람들 무리를 따라가다가 나도 모르게 길을 잘못 들어선듯 했다. 쩝.. 어쩔수 없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려는 순간, 뭔가 익숙한 횡단보도 하나가 보인다.
여기는 애비로드?!
차가 오건 말건 다들 걸어댕기고 있음 ㅋㅋ
바로 애비로드(Abbey Road)! 1969년 발매된 비틀즈의 열한번째 정규앨범 애비로드 표지사진을 찍은 바로 그 횡단보도였다. 어쩐지 다들 모여서 열심히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더라니. 위 두번째 사진 오른쪽 가로등 밑을 보면 알겠지만, 까만 정장을 입고 기타를 들고 뭔가 비틀즈 코스프레하는 듯한 영국 청년도 눈에 띄었다. 나도 열심히 사람들 사진을 찍었다. 음, 근데 누가 내 사진 좀 찍어줬으면 좋겠는데.
고개를 돌리니 단체 유니폼을 입고 서 있는 동양인 여자 세 분이 보인다. 유니폼의 일장기와 목에 걸려있는 신분증을 보아하니 일본 올림픽 대표팀인 것 같다. 마침 옆에 있던 한 외국인이 이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 당신들이 활을 쏘는 것을 TV에서 보았어요. 잘 했는데 참 아쉽겠어요." 아, 일본 여자양궁대표팀이구나. 아마 오전에 있었던 여자양궁 개인전 예선경기를 치른 후 나와서 돌아다니는 듯 했다. 아쉽게 본선에는 못 올라간듯. 음 뭐 딱 세명이니 같이 찍으면 되겠네^^
"스미마셍~ 익스큐즈미~ 같이 사진찍는거 어때요? 투게더?"
"투게더~? 오케이~!"
"아리가또고자이마스~ 땡큐~"
옆에 서 있던 일본인 코치로 추정되는 남자분께 사진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함께 횡단보도를 걸어가며 찰칵찰칵:-)
일본 양궁 대표팀
그녀들과 함께. 맨 앞이 저에요~
사진을 확인해보니 구도가 좀 아쉽긴 했지만... 이러다가 경기를 놓칠 것 같아 뛰다시피 하며 경기장으로 향했다. 구보하듯이. 구보간에 노래한다! 노래제목 아 워너 홀드 유어 핸드~ 그렇게 가는데 앞에서 익숙한 덩치 세 명이 걸어온다. 엇 티비에서 본 사람들인데. 한국 남자 양궁대표팀 임동혁, 오진혁, 김법민 선수다. 반가움에 인사를 하며 사진 요청을 했으나, 쿨하게 거절당했다 ㅋㅋ 에잇. 그래서 그냥 뒷모습이라도 남겨야겠다 싶어서 뒤에서 한컷.
사진 같이 찍어주지 그랬어요... ㅠㅠ
경기장 도착!
경기장에 도착했다. 역시나 티켓검사, 가방검사, 소지품 검사를 했다. 런던의 유서깊은 크리켓 구장에 임시 관중석을 설치하여 이렇게 번듯한 양궁 경기장으로 탈바꿈시켰다. 다소 어려운 경제사정 속에서 나름 슬기롭게 내놓은 대안인듯 하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해서, 경기장 내 매점에서 음료를 하나 사서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주변은 다들 외국인...^^...그래도 결승전 티켓 구한게 어디라며 ㅎㅎ
경기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이날 오후 경기는 8강부터 결승까지 진행된다. 마침 기보배선수와 러시아 크세니아 페로바선수의 8강전 경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쏘는걸 현장에서 보고 있자니 더욱더 가슴이 졸인다. 화살이 슝 하고 날라가서 과녁 가운데에 꽂히는게 정말로 신기할 따름이다. 일단 8강 경기는 기보배 선수의 6:4 승!
경기 시작 전
활 시위를 당기는 기보배 선수
잠시 후 이성진 선수도 등장~
곧 이어 이성진 선수와 멕시코 마리아나 아비티아 선수의 경기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이성진 선수는 패하고 말았다. 음, 근데 멕시코 감독님도 한국인이네.
준결승!
이어진 준결승 경기. 미국 대표 카투나 로릭 선수와 우리 기보배 선수의 경기. 기보배의 6:2 승! 결승 진출! 어 근데 미국팀 감독도 한국인이다. 경기 끝나고 서로 인사하는데, 한국 양궁 동창회 하는 느낌.
멕시코 선수끼리 4강전 중
이어서 준결승 제 2경기. 공교롭게도 멕시코 선수끼리 격돌했다. 한국인 멕시코 감독님은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골고루 격려 중이심^^ 경기장 아나운서 아저씨도 재미있으셨는지, "저 감독은 과연 어느 선수 뒷편에 설까요?" 하는 멘트를 날린다. 처음에 두 선수 중간에 서 있으려 했던 것 같은데, 경기 진행 심판이 와서 그러면 안되니 한 선수 선택해서 뒤로 가라고 했다. 나중에 1세트 끝나고 다른 선수 뒤로 가려고 하니깐 이동도 못하게 함. 융통성 없기는... ㅋㅋ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우리 기보배 선수와 멕시코 아이다 로만 선수의 대결이다. 선수들이 슈팅라인에 서면 경기장엔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런 섬세한 연출을 보았나.. 덩달아 막 두근두근하고 그런다ㅋ
기보배 선수가 먼저 활을 쏘았다. 화살이 70m를 날아가서, 자그마한 과녁 가운데에 콕 박힌다. 어우, 심장과 염통이 투게더로 쫄깃해지고 있다. ㅠㅠ 기보배 화이팅!
1번 과녁이 기보배선수의 과녁
아아, 결국 슛 오프 ㅠㅠ
팽팽한 접전이 지속된 가운데에 마지막 5세트. 4세트에서 10 10 10 을 쏘며 선전한 기보배 선수였으나, 5세트에서 다소 난조를 보이며 26점으로 마무리. 결국 세트스코어 5:5가 되고 말았다. 사실 멀리서 봤을 땐 이긴 줄 알았는데... 어쩐지 경기장이 조용하더라.. ㅠㅠ 경기는 마지막 한 발의 화살로 승부를 가리는 슛오프로 결정지어지게 되었다. 전광판에 뜬 SHOOT-OFF REQUIRED가 왜 이리 얄밉게 보이던지.
기보배 선수가 먼저 화살을 쏘았다. 악 그런데 8점이다. 순간 찬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진 경기장. 중계를 보면 신나게 텐! 나인!을 외치는 목소리의 주인공인 장내 중계 아나운서도 안타깝다는듯 에잇을 외쳣다. 아, 졌구나. 아쉽다...엉엉...ㅠㅠ 막 울려던 참이었는데...!!
아이다 로만 선수도 8점!
와 금메달이다!!! ㅠㅠㅠㅠ
아이다 로만 선수도 8점을 쏘고 말았다. 긴장감 탓이었을까, 아니면 과녁 근처에서 시종일관 변화하던 바람 탓이었을까. 같은 8점이었지만, 기보배 선수의 화살이 과녁 중앙으로부터 조금 더 가깝게 보였다. 기보배 선수의 우승이다. 우와 금메달이다! 만세만세!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나게 태극기를 흔들었다. 신난다!!! 역시 우리나라 양궁은 세계 최강이다ㅠㅠ
시상식 시작^^
금메달을 목에 거는 기보배 선수
잠시 후, 메달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세 명의 선수가 시상대 위에 올라섰다. 은, 동메달은 멕시코 선수들이 차지했다. 한국인 감독님 정말 대단한듯.. ^^ 제일 높은 곳에 기보배 선수가 올라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축하합니다! 이성진, 최현주 선수도 수고 많았어요.
애국가가 흘러나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가장 높은 곳을 향해 태극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경기장엔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현장에서 보면 완전 감동받으면서 눈물 뚝뚝 흘릴 줄 알았는데 그정도까진 아니다. 메마른 내 감정이 어디가리..ㅋㅋ 그래도 좀 찡~하긴 하다.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태극기를, 그리고 애국가를 들으니 기분이 색다른 것이 사실이다. 매일 저녁 6시 국기하강식과 동시에 들려오던, 부대에서 듣던 애국가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어쨌거나 기보배 선수, 고마워요! ^^
경기장을 나섰다. 아까 아침에 출발하면서 형주와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만날 장소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내셔널 갤러리 계단 앞^^ 또 다시 지하철을 타고 갈까 하다가, 런던 와서 2층버스 한 번도 못타보면 뭔가 억울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경기장 근처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생각보다 버스 노선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대략 보니 13번 버스를 타면 채링크로스 근처에서 내려주는 것 같았다. 뭐 잘못 탄거면 다시 타면 되지. 나는 쿨하니깐. ㅋㅋ
조금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버스 또한 원데이트레블카드(One day Travel card)를 이용하여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 있는 계단에 신기해하며 냉큼 2층으로 올라갔는데, 아, 앞자리는 이미 사람들이 앉아있다. 안타깝지만 뒤에 앉아서 가야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발밑에 있는게 조금은 신기하다.
버스가 온다~
이상한 모양의 태극기가 걸려있던 런던
라이온킹 전용 극장, 라이시엄 씨어터
버스에서 내렸다. 시간을 보니 약속시간까진 조금 여유가 있길래, 라이시엄 극장(Lyceum Theatre)을 먼저 찾아가 예매한 표를 받았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채링크로스 기차역을 지나 약 10분쯤 걸으니, 웅장하게 생긴 극장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티켓 오피스를 찾아서 미리 프린트해간 이메일을 보여주니 티켓으로 교환해 주었다. 영어 뮤지컬이라 이거 제대로 이해는 될지 미리부터 걱정이다.
다시 찾아온 트라팔가 광장
오늘은 멕시코 음식점^^
내셔널 갤러리 앞 계단에 앉아 형주를 기다렸다. 여름이지만 그리 덥지는 않은, 영국의 날씨다. 계단에 앉아 트라팔가 광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사람들로 분주하면서도 즐겁고 평화로운 느낌이다.
조금 있으니 형주 도착~ 어제처럼 근처를 둘러보다, 'Chiquito'라는 이름의 멕시코 음식점에 들어갔다. 다른 가게보다 나름 가격이 착했기 때문...^^ 퀘사디아와 이런저런 어려운 이름들의 음식을 시켰다. 식당 안에 자리가 없어서 밖 테라스에 앉았는데, 요것도 나름 분위기 있고 좋은 듯 하다.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된 끼니를 먹는 지라, 남김없이 냠냠!
라이시엄 극장 내부
밥을 먹고 다시 극장으로 향했다. 형주도 다른 연극 티켓을 구입했는지라, 각자 공연을 보고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1794년 개관된 라이시엄 극장. 물론 지금의 건물은 1830년 화재로 파괴된 건물을 몇 번 재건축하여 지어졌다. 현재 뮤지컬 <라이온 킹> 전용극장이다. 내가 예약한 자리는 1층 스톨(Stall)석 뒷편. 무대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티켓 가격이 수직상승하길래, 적당히 뒷자리를 예약했는데 생각보단 잘 보인다. 극장이 생각만큼 크진 않아서, 사실 어디 앉아도 공연이 잘 보일 것 같긴 했다.
잠시 후 공연 시작. 각종 특수분장을 한 주인공들이 무대가 아닌 관객석 뒷편에서 입장한다. 내 자리가 통로쪽이었기에, 내 옆을 막 스치며 지나갔다. 분장부터 무대장치 하나하나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배우들도 뭔가 느낌이.. 티몬은 티몬같고 품바는 품바같았다. ㅋㅋ 아 그렇지만 점점 졸린다.. 눈이 감기면 안되는데.. 대체 뭐라고 대사를 하는건지 반도 못알아 듣겠다.. ㅠㅠ
다행히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어, 잠도 깰 겸 밖으로 나갔다. 신기하게도, 관객석 문을 열고 나가니 각종 음료와 주류를 파는 바(Bar)가 자리하고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이 와인잔 비스무리한 걸 손에 들고 막 얘기를 나누고 있다. ㅋㅋ 여긴 이런 문화구나.. 화장실 갔다가 다시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2부 공연의 시작은 어릴적 일요일 아침 8시 디즈니만화동산에서 많이 들었던, 티몬과 품바가 부르는 '하쿠나 마타타'였다. 욕심 버리면~ 즐거워요~ 하쿠나 마타타~♬
라이시엄 극장의 야경
기나긴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서야 거리는 어둑어둑해져있다. 밤 10시가 넘어야 해가 완전히 지는 영국. 야경을 보기 위해 아까 오전에 거닐었던 그 길을 따라 다시 걸었다.
밤에 바라본 내셔널 갤러리
노오란 조명이 참 고풍스럽다
밝게 빛나는 런던아이
건물들이 저마다의 조명으로 빛나고 있었다. 밤에 보는 런던의 야경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었다. 삼각대가 있었더라면 좀 덜 흔들린, 그리고 예쁜 야경사진을 찍을 수 있었겠지만, 그랬더라면 내 어깨는 더욱더 아파왔었겠지, 하며 아쉬움을 달래었다.
야경을 보며 걷다보니 꽤나 늦은 시각이다. 내일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야지. 웨스트민스터역에서 노란색 써클라인(Circle line)을 타고 호스텔이 있는 하이스트리트켄싱턴역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나와서 밤 늦게까지 돌아다녔더니 좀 피곤한 하루다. 그래도 생각만큼 몸이 힘들지는 않다. 멀리까지 여행왔는데 이대로 지칠 수 없지, 라는 생각 때문인걸까? ^^ 내일은 또 어떤 풍경과 마주할지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20120730 - 20120818 민군의 유럽여행기 ⓒ 김석민
Nikon D70s + Tamron 18-20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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