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by Day/시시콜콜일상

성적입력에 관한 짧은 생각

민군_ 2010. 2. 14. 00:02

학기말이면 가장 큰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성적입력이다. 31명의 교과별 특성 및 종합의견을 하나하나 입력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몇날 몇일을 끙끙거리다가 결국 하룻밤을 꼬박 새고 나서야 입력을 마칠 수 있었으나, 그땐 이미 교감선생님한테 "신규가 왜 이리 늦게 해?"라는 핀잔을 들은 뒤였다. 물론 "처음이라 그래요 ㅠ_ㅠ"라는 핑계를 대긴 했지만.

그래, 처음이라서 아직 일처리가 미숙한 탓도 있고, 그래서 더더욱 "신규가 벌써부터 성적입력을 귀찮아 하면 되겠니? 하다보면 익숙해질거야"라고 하시는 분들도 분명 계실 것이다. 근데 그건 그렇고, 지금의 '성적입력', 즉 종업식날 학생들손에 서너장씩 들려질 통지표가 정말로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싫음 말고. -_-;


- 학생수가 너무 많다.

= 우리 반 학생수는 31명이다. 2월 1일자로 전학온 미경이를 제외하면 서른명. 보통 한 명당 입력하게 되는 문장수는 대략 25~30문장가량 된다[각주:1]. 25개라 쳐도 25x30=750문장을 입력해야 하는 셈이다. 이러다보니 750문장을 다 다르게 입력하려는 의욕과 마음과는 다르게, 어느순간 ctrl + C와 ctrl + V를 능숙하게 누르고 있는 날 발견하게 된다. 또한 구미 모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만드신 자료를 정말 110% 활용하게 되기도 한다.

이러다보니 아무리 집중하고 입력하려 해도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물론 수행평가 및 그동안의 평가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국어-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를 바꾸어 쓰는 기능은 양호하나 맞춤법 및 글씨를 바르게 쓰려는 노력이 다소 미흡함"과 같은 평가 내용을 입력하긴 하지만, 20번이 넘어가면서 문장은 점점 짧아지고, 30번쯤 오게 되면 "수학-선대칭도형의 성질을 알고 선대칭도형과 점대칭도형의 차이점에 대해 알고 컴퍼스와 자와 각도기를 이용하여 잘 작도할 수 있고..."처럼 점점 꼬이기 시작한다.

정말 내실있는 입력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내실있는 수업 진행을 위해서라도 학급당 학생수 감축은 필요한 부분이다. 물론 출산율 감소때문에 줄어들 예정이라곤 하지만-_-. 언제까지 그렇게 기다릴텐가! [각주:2]


- 서술형 입력은 때론 정확한 정보를 주지 못한다

= 예를 들어, '사회 - 인간과 사회 영역의 성취도는 우수하나 인간과 시간 영역의 관심도는 미흡한 편이다'라는 내용이 통지표에 적혀왔다고 치자. 학부모가 교사가 아닌 이상, 부모들은 도대체 얘가 뭘 잘했고 못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보통은 '경쟁의 장단점 및 우리나라 경제 구조를 조사하여 잘 이야기하나, 우리 조상들의 문화재에 대해선 관심이 다소 미흡함'이라 표기하게 되는데, 이 또한 5학년 사회교과의 수 많은 학습주제 중 일부분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몇몇 사람들이 '초등학교땐 다 잘하는 줄 알았는데, 중학교 들어가니 애 성적이 바닥이더라'와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중학교 진학 이후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내신 성적 줄세우기가 좋은 현상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분명 성적줄세우기로 인한 병폐는 과도한 사교육시장의 확장 및 일부 어린 학생들의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적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나라 학교가 모두 대안학교화되고, 모든 부모들이 학생들의 성적 대신 바른 인성을 우선적으로 고민하지 않는 한! 성적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또는 가정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된다(물론 우리 부모님은 나의 성적과 관련하여 날 야단치거나 혼내신 적이 없으시다. 물론 우리 부모님은 경쟁으로 대변되는 그런 사회를 싫어하시기도 하지만, 일단 내가 성적을 잘 받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_-;)

통지표엔 구구절절 각 교과별로 써 놓을지 모르지만, 어차피 학교에서는 몇 번의 시험을 보고, 성적을 낸다. 어차피 내는 성적, 그냥 수우미양가로 간편하게 하면 안될까? 물론 장단점은 있을 것이다. 국어 - 수, 수학 - 우... 이렇게 단순해지기 때문. 또한 양갓집 규수들은 꽤나 슬플것이다(제삿날이 될 수도). 그렇지만 알아보긴 이게 더 쉽지 않을까? 어차피 말 안해도 아이들이나 부모들은 내가 어떤 과목에 약한지, 어떤 과목을 잘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고. 무조건 '~잘함'보단 수우미양가가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제일 좋은건 어릴때부터 온갖 시험에 성적 줄세우기를 하는 요 더러운 세상을 뒤엎는것이겠지만 말이다...)


- 대신,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은 길게길게 적자.

적어도 1년간 아이들을 지켜본 담임이라면,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초등학교 교사의 또 다른 전문성 아니겠는고. 성적도 중요하지만 어린 시절 인성이 중요한 이유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초등학교가 교과별 전담 100%가 아니라 담임제인 이유도 어느정도 이런 연유에 근거하고 있을 터이다.

그러니깐, 한 학기 혹은 1년을 마무리하는 통지표에 꼴랑 "교우관계가 원만하며 항상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노력함. 전 영역 학업성취도가 우수하며, 스스로 학습하는 태도가 바람직함" 이렇게 한 두줄 쓰는 것에서 끝내지 말자는 것이다. 간디계절학교에서 일주일만 있어봐도 A4 두장 분량으로 편지를 쓸 수 있는데, 1년이라는 시간은 책 한권정돈(?) 쓸 수 있지 않겠냐, 뭐 이런 얘기다.

물론 전제해야 할 상황들이 몇 개 있긴 하다. 교사 잡무가 우선적으로 줄어들어야 할 것이며, 아까 말했던 학급당 학생수도 당연 적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면 성적 위주의 사회 분위기가 점차 바뀌어 가는 것이 되겠지.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정말 초등학교의 전문성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실행되려면 한참 먼 훗날의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다 됐고, 우리반 컴퓨터부터 좀 바꿔줘. 통지표 입력하다가 다 집어던질뻔 했어. -_-

  1. 개인별로 입력해야 할 내용 중 문장으로 입력해야 하는 부분을 살펴보면.. 교과별 특기사항(총 10개 교과 중 전담선생님이 입력해 주는 체육, 영어는 제외) 각 교과별 1~2문장 창의적재량활동(재량활동별로 입력. 우리학교는 3개), 특별활동(자치/적응/행사, 계발, 봉사로 묶어 입력), 진로지도(5학년이라..)사항, 마지막으로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4~5문장. [본문으로]
  2. 지금 우리나라 학급당 학생수는 30명 이하로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농산어촌 지역과 도시지역의 차이는 크다. 중요한건, 이건 평균이라는 사실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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