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이것저것

'학주'에 대한 아련한 추억 ㅡ 송창윤 선생님.

민군_ 2007. 12. 23. 10:39

영완이가 쓴 '김연아어록(http://silentpassion.tistory.com/86)을 보니 갑자기 이분이 생각나서..ㅋ


                                                     

학원공포물에 한 획을 그었던 영화, '여고괴담'에선 '미친개' 혹은 '불여우'라는 섬뜩한(?) 별명들이 들립니다. 그 별명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학생주임. 줄여서 '학주'라고 부르던 선생님들의 별명이었죠.
제가 다니던 포항고등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던지라, 학주티처는 그닥 학생들에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학년때 송창윤선생님이라고, 학생들에게 아주 악명높은 선생님이 학주를 맡고 계셨습니다.
그분도 저 별명에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만.. 예외적으로 '좋은아침'이라는 별명이 있었어요.
아침마다 교문에서 '좋은아침'이라고 인사하셨던 까닭이죠.

그렇다고 해서, 교문통과가 자유로웠던 것은 절대 아닙니다-_-
대부분의 학교들이 그렇듯이.. 매우 엄격한 교문통과 기준을 가지고 계셨던 우리 좋은아침 선생님..

사실 저는 기숙사 살아서 아침에 교문통과해본 적이 없었지만
대신에 1년간 기숙사에서 생활하시던 선생님 덕분에(?)
매일매일 긴장속에 살아야했었지요. 허허허;

제가 2학년때, 선생님은 고향인 제주도로 발령이 나셔서 약 26년간의 경북에서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하셨답니다.
그때 제가 속해있던 포고신문에서 선생님에 관한 기사를 썼었는데. 한번 가져와볼께요.


He's Gone... "좋은아침!"

“좋은 아침!”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송창윤선생님. 기숙사에서 민기가 찍은 사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아침이면 들을 수 있었던 그분의 대표적 인사말이자 별칭이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아침 등교 길은 긴장 그 자체였다. 학교 담장을 따라 교문에 다가갈수록 고조되는 긴장감. 머리를 단정히 빗어 최대한 짧아 보이려 노력하거나 바지를 올리고 내려서 약간이나마 통을 크게 보이려는 학생의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교문에 들어섰을 때, 교문 좌측에 가방을 벗어 놓고 일렬횡대로 서서 찢겨진 바지자락과 땅에 나뒹구는 머리카락만 보고 있는 학생들과 우측의 운동장에서 ‘개발에 땀나도록’뛰는 학생들이 단골손님처럼 있었다. 그리고 뒷짐을 지고 교문 한 가운데 근엄하게 서 계셨던 그 분! 송창윤 선생님이 계셨다.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선생님의 옆을 지나가는 순간……. 그 일순간에 밀려오는 희열이란 로또당첨에 견줄 정도는 아니었을까. 팽팽한 긴장감이 온 몸을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극적 반전이었다. 교문에서 아침마다 겪었던 기-승-전-결의 시련전개를 기숙사생들은 결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평소에 말 잘하던 학생들도 일순간 말을 더듬게 만드는, 100m 밖에서만 봐도 다른 길로 돌아가게 만드는 그 분의 카리스마는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 분의 카리스마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학생들을 움츠리게 만드는 특출한 언변이 그 원천인 듯싶다.

  끼어들기와 밀고 당기기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던 급식소 배식 줄이 ‘떴다!’라는 소리 한마디로 순식간에 북한인민군 행렬을 연상케 하는 줄로 바뀌는 장면을 보면 충분히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을 주기 위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마라톤 풀코스에 출전하시기도 했다. 강구에서 학교까지 뛰는 마라톤 연습 중 발목 부상을 입으셔서 그동안의 연습이 물거품이 될 우려가 있었지만, 침을 맞아 가시며 끝내 세시간대의 기록이라는 쾌거를 이루셨다.

  학생부장이라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자리에 계시면서도 ‘기숙사 아버지’의 역할 또한 훌륭히 해내셨다. 좀처럼 웃지 않으실 정도로 자기관리에 완벽하셨던 만큼 기숙사 관리 또한 철저하셨다. 두발검사를 하실 때면 단호하고도 냉정하실 만큼 기숙사생들의 머리를 수북이 뜯어내셨다.

  가끔 약주를 좀 드시고 오시는 날 만큼은 자신에 대한 결박이 조금 풀어지시는 듯 했다. 마치 옆집 아저씨와 같은 푸근한 미소로 의자에 앉아 계시곤 했다. 그렇지만 그날 보았던 선생님의 미소가 그동안 무표정의 베일 속에 감추어 오셨던 진짜 모습은 아니었을까. 떠나시던 날, 모든 기숙사 학생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며 붉게 충혈된 눈에서 보여주셨던 눈물은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학생들에게 어쩔 수 없는 악역, 경외의 대상이 되실 수밖에 없었던 선생님….

  그 모든 것이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관심어린 의도셨을 것이다. 가장 무거운 벌은 학생들에 대한 선생님의 무관심이 아닐까.

김석년 기자
ghost8615@hanmail.net



아, 사실은 위와 같은 이야기보다... 이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었어요.
송창윤선생님께선 가끔 흥분하시면.. 뭐랄까, 언어중추에 혼란이 온다고 할까요?^^;;
예를들면 무한도전의 박명수나.. '낢이 사는 이야기'에 나오는 낢씨의 어머니와 같은?

그런고로, 당시 포고의 말 실수 1위를 차지하신 바로 우리 송창윤선생님.
그분의 어록을 메모장 가득히 정리해 둔 자료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어디갔는지.
기억나는대로 적어봤는데.. 지금봐도 재미있네요^^


◇ 어머니 잘 주무셨습니까? 저도 잘 주무셨습니다! (응?)
- 2박 3일 야영갔던날, 둘째날 아침 체조 끝난 후.

◇ 운동장조회가 있으니 강당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 우린 어디로 가야하죠?

◇ 10번부터 13번까지 10명 나와.
- 감춰왔던 분신술을 쓸 시간이 온거야.....

◇ 8월 28일부터 8월 22일까지
- 시간을 달리는 소년이 되어 보아요 여러분.

◇ 27일 제헌절에

◇ 실내 밖의 온도가 맞춰져야… 시원하게 느끼지.
- 무슨 뜻일까?

◇ 이제부터 분필하면 죽는다!
- 분필로 장난하면 죽는다는 뜻.

◇ 아마 그렇구나!
- 아하, 그렇군요~!

◇ 땀을 나죠?

부모가 허락 없이 방학동안 3일 빠졌기 때문에
- 우리학교는 부모님도 방학때 학교에 나와야했던 것이었다.....ㄷㄷㄷ

◇ 빨리 쓰레기통 갖다 버려
- 쓰레기통 비우는 것이겠죠..ㅋ

◇…야, 이제부터 리모컨 듣지 마.
- 리모컨 아니죠, 워크맨 맞습니다.. (-_-)

◇ 잘못을 했으면 선생님을 찾아가서 잘못을 하고 잘못을 빌어라.
- 가중처벌하시려구요?

◇ 이 색히, 왜 이리 시끄러워. 입으로 말하나?
- 네.

◇ 좌향 !
- 우린 또 어디를 봐야 하죠?

◇ 뒤에 차온다. 위험해 차쪽으로  붙어.
- 어머? 다시한번 말씀해주세요~

이 외에도 재미있는게 엄청 많았는데.. 아, 아쉽다. 기억이 다 안나네요.
정말 낢씨 어머니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지신듯. -_-

                                                     


아무튼 정말 무서웠던 선생님이셨지만.
떠나시기 전날, 기숙사에서 기숙사생 240여명의 손을 하나하나 다 잡아주시던 모습은 잊혀지지 않네요.

..... 그래도 가위들고 머리 막 자르는건 너무하셨.....

지금은 건강하게 잘 계신지^^
글 쓰다보니 고등학교때 생각이 몽글몽글 샘솟음을 느낍니다.
여러분의 고등학교 학주티처는 어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