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작은목소리

학교에도 '4대강 살리기' 공문... 홍보야? 세뇌야?

민군_ 2009. 6. 28. 09:26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는 총 3개의 대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3단원의 제목이 바로 '환경보전과 국토개발'이다. 환경도 보전해야 하지만 국토도 개발해야 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환경의 소중함을 깨닫고, 국토 개발의 필요성도 느끼며, 결과적으로 '국토개발도 하긴 하되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단원인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환경보전'과 '국토개발' 사이에서 자신의 주장을 적절한 근거와 함께 이야기해 보는, 토론수업이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3단원을 배울 차례가 되었다. 학생들에게 동기유발 자료로 무엇을 보여줄까 생각하다가, 어렵지않게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4대강 살리기'(혹은 '4대강 죽이기'?). TV에서, 혹은 신문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연일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지라, 학생들도 대부분 이 사업에 대해 알고 있었다. 

간략하게 양 측의 주장을 설명한 후,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발표해 보자고 하였더니, 30명 중 25명의 학생들이 '환경보전' 쪽에 표를 던진다.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렇게 되면 토론이고 뭐고 불가능하기에 억지로 유도심문을 했다.

"그래도 국토를 개발해야 일자리도 생기고, 경제도 살지 않겠니?"

이러한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학생들의 반론이 쏟아진다.

"한 번 파괴해 놓으면 다시 돌아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요."
"억지로 강을 건드리면 홍수가 더 날지도 몰라요."
"왜 개발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물이 더럽다면 다른 방법들도 있잖아요."

"파괴한 자연을 다시 되돌릴 수 있나요?"

그런데 이제는 학생들의 이러한 생각이 모두 '거짓'이라 말해야 할 것 같다. 아니, 좀 더 정부식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너희들 생각은 모두 오해란다"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만 같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공문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국정과제 <4대강 살리기> 홍보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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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급 교육청에서 학교로 보내진 '4대강 살리기' 홍보계획.
ⓒ 김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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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4대강 사업과 관련하여 이런 류의 공문이 올 것이라는 예상은 어느정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문의 내용은 영 예상밖이었다. 4대강 살리기 정책 토론회 개최라면 또 모를까, 이런 일방적인 지시사항을 담은 공문이라니.

첨부화일의 내용은 더더욱 가관이다. 먼저 추진배경을 보자. "국정과제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다는 배경까지는 그래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난데없이 '고유가시대'를 언급하며 에너지 절약과 같은 생뚱맞은 내용들이 추진 배경으로 나와있다. 그렇다면 4대강을 '살리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강 근처에 사는 공무원들은 자가용 대신 돛단배라도 타고 다니라는 얘기인가. 아니면 새로 놓일 자전거길을 따라 열심히 페달을 밟으란 얘기인지도.

자, 이제 핵심내용을 보자. "소속 직원, 교원 등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 및 홍보를 통해 4대강 살리기에 대한 이해 조기 확산"이란 대목이 우선 눈에 띈다. 대체 이건 어떤 의미인가? 아직도 정부는 우리 국민들이 잘 몰라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 인식하고 있는 걸까? 집중적인 '교육'인지, 아니면 '세뇌'인지, 이 한 문장으로는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그 아래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광범위한 공감대 형성"이라는 말도 맘에 걸린다. 이젠 학교, 도서관 등의 기관들을 정부 정책 홍보 기관으로 만들겠다는 얘기인가? 이는 아래 문단의 '행정사항' 내용과 상통한다. 각급학교 직장교육에, 홈페이지에는 홍보 배너를 설치하라니, 결국 학교를 홍보기관으로 만들겠다는 얘기다.

학교의 정책홍보기관화는 정치적 중립을 어기는 것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과연 옳은건가? 아무리 국민의 대다수가 찬성을 하는 정책이라 할 지라도, 학교와 같은 기관을 정책 홍보 기관으로 해도 좋은지에 대해선 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사실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을 둘러싼 논쟁도 그들이 '교사'이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을 요하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법 때문에(정말 이 법 조항의 해석이 옳은것인가는 일단 차치하고) 논란이 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물며, 각종 여론조사마다 최소 절반 이상, 혹은 2/3이 반대를 하고 있는 이러한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학교 교사들을 이용한다는 이 계획은 '전교조 교사'들을 징계하겠다는 정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행동이다. 

혹자는 이러한 본인의 주장에 대해, "4대강 사업도 정치적인 것이냐"라는 '태클'을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 대체 정치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 정부가 하는 일이 정치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정치란 말인가. 중요한 것은 논란이 되고 있는 정책들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는 '징계' 혹은 '형사고발' 등의 단어로 옭아매면서도, 정작 찬성의 목소리들은 '적극적으로 홍보'하려는 정부의 '정치적인' 자세에 있는 것인데 말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다원성'에 있다

다시 교과서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초등학교 사회 교과의 목표는 민주적 시민 양성에 있다. 앞으로 사회의 주인이 될 어린이들이, 무엇보다 민주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사회교과만의 목표가 아니라, 초등학교를 비롯한 모든 학교들의 목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민주주의라는 것을 상당히 '제멋대로' 해석하여 적용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가까운 북한의 공식 명칭 또한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아닌가. 굳이 북한까지 갈 필요도 없이, 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 또한 '한국식 민주주의'를 내걸었던 적이 있었다. 

이렇게 해석이 다르고, 그 다른 해석 때문에 말썽이 빚어지곤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본질인 '다원성'을 가지고 이야기해 봐야 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의 의견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다른 의견들을 존중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토론하며, 합리적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 아닌가.

그런데 갑자기 웬 민주주의 타령이냐고? 요즘 터지는 사건들마다 이 '민주주의'라는 단어와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에서다. 반대편의 의견 정도는 '좌빨'의 의견 정도로 묵살해 버리고, '아직 당신들이 오해하고 있어서 그렇소 허허허허'하며 '대한늬우스'를 부활시키는 등 각종 홍보(혹은 세뇌교육)에 여념이 없는 저기 저 멀리의 사람들. 과연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 2009 대한민국의 모습인가.

교감, 교장 선생님께 질문 하나 제대로 못하는 대표적 소심교사인 내게는 비록 'MB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라 할 지라도' 홍보명령을 거역할 권리따윈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내게 맡겨진 학생들을 민주적 시민으로 키울 '의무'가 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걸까. 해답은 이미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