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작은목소리

뭔가 '씁쓸한' 한국교총의 교원평가 찬성 선언

민군_ 2009. 8. 12. 17:17

(아고라에 썼던 글인데,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현직 교사입니다.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희 학교에서는 지난 6월말부터 7월초에 걸쳐, 이미 교원평가를 실시했습니다.

교원평가 선도학교였나 시범학교였나 뭐 그런 이유로말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전 5학년 담임을 맡고 있구요,

저희 학교는 41학급 규모로 교원이 약 50여명 가량 되는, 이 일대에서는 큰 학교입니다.

 

아무튼 교원평가를 했습니다.

방법은 온라인 설문조사였구요,

평가에 참여한 사람은 학생, 교사, 그리고 학부모였습니다. 교사들은 서로 상호평가를 했구요, 교감 및 교장선생님에 대한 평가문항도 작성을 하였답니다.

(참고로 1~3학년 학생들은 평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레 평가기간동안 선생님들의 대화주제는 '과연 이 평가가 정말 교사에게 영향이 있는 것인가?'였지요.

(여기서 영향이란 내 봉급-_-;을 깎아먹는 영향이 아닌, 교사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등의 영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래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있겠다'와 '과연 제대로 된 평가였을까?'라는 주장이 참으로 팽팽했다는 것이지요.

 

저희반 애들은 그나마 좀 착해서(?) 12개의 평가 문항 중 대부분을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에 체크를 해 주었더군요 -_-;

근데 제가 말이 좀 빠른 편이라..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우리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속도로 설명을 잘 해 주십니까?"라는 문항엔 보통과 그렇지 않다에 조금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아 이걸 보면서 반성 또 반성...

 

문제는 6학년 모 선생님 반에서 일어났습니다.

평소 좀 무섭다고 소문난 선생님이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을 땐 재미있는.. 동료 선생님으로서 보기엔 참 멋있는 분이셨는데(그렇다고 애들을 막 패거나 그러진 않구요..)

한 학생이 악의를 갖고 있었는지, 모든 평가문항을 읽지도않고 12개 문항 모두를 '매우 그렇지 않다'로 체크해 버린 후, 마지막 13번 자유의견기술란에 '씨x 너같은 선생은 어쩌고 저쩌고'라 아주 적나라하게 욕을 써 놓았던 것이죠.

(익명성이 보장되어 있는 평가이지만... 눈치빠른 담임은 누군지 대충 압니다)

 

저희반이라고 이런 일이 없었으리라 보장은 못하겠습니다. 12개 다 읽고 체크하기 귀찮아서 '매우 그렇다' 혹은 '매우 그렇지 않다'를 조르륵~ 다 체크한담에 확인을 눌러버린 학생도 있을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과연 교원평가가.. 영향과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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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원평가 자체의 목적은 찬성합니다. 평가를 통해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알고, 연수를 받으며 실력을 가꿀 수 있다면, 저같이 경력이 얼마 안되는 교사에겐 참으로 필요한 제도이지요. (특히 연수비도 지원해준다고 하니.. 와우.ㅎㅎ 얼마나 지원해줄진 모르겠지만요ㅠㅠ)

 

하지만 그 어떤 제도건 간에 문제점이 없을 수가 없지요.

 

계속해서 지적되어 오고 있는 문제이지만...

 

학생들에 의한 평가의 신뢰도를 어디까지로 할 수 있을지..

(물론 평가기간 전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절~대로 인기있는 선생님을 뽑는 평가가 아니다!" 라고 강조, 강조, 또 강조를 했지만... 평가결과를 보면 과연 얘네들이 그때 설명을 잘 듣고 평가를 한건지 참 의심이 됩니다.)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평가를 할 것인지

(물론 반대하는 쪽에서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것 처럼 '서울대 몇명 보낸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라고 기준을 잡진 않겠지요.. 정말 교사에게 필요한 덕목 - 예를들면 수업시 발문 기술, 다양한 활동, 확실한 평가, 적절한 음량 및 음성으로 수업을 하는지, 혹은 생활지도와 관련하여 학생들에게 관심을 주는지와 같은 것들을 평가해야 할 텐데..)

 

또 평가결과를 가지고 어떻게 피드백을 줄 것인지

(저희 학교에선 평가 후 자기능력계발계획서인가 뭐 그런걸 썼었어요..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며, 어떤 연수를 통해서 계발할 것인지 스스로 계획을 세워 결재맡았지요. 이정도면 괜찮은거같음!)

 

이런 쟁점사항들이 정리되지 않는 한, 이번 교총의 '깜짝선언'은 너무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합니다.

(아, 저는 아직 무소속입니다~ 교장쌤이 이 지역 교총회장이라 계속 가입의 압박을 받는중이지만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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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흔히 말하는 '부적격 교사'와 '교원평가제'간의 연계입니다.

 

교원평가제와 관련된 기사 및, 이곳 아고라에 올라온 글들을 쭉~ 보면

(그리고 교총 회장이 말씀하셨다는 그 내용을 잠깐 보더라도)

학창시절 겪었던 부적격 교사에 대한 엄청난 비난과 욕과 함께(솔직히 그런 교사들은 스스로 반성좀 했으면 하고 생각하는 1인..-_-), 그러니 교원평가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부적격 교사의 퇴출이지요.

이는 아래 교총 회장님의 말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교사로서 교단에 함께 있기 싫은 교사가 있다. 예컨대 친북좌파 교사, 성희롱하는 교사, 성적 조작하는 교사, 아이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무능한 교사들과는 같이하고 싶지 않다. 이들이 우리 교직사회를 희화화시키는 적 아닌가. 평가를 통해 거를 사람은 걸러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맞습니다. 부적격 교사, 퇴출해야 합니다.

(친북좌파 교사가 정말 부적격인지, 아님 전교조 교사를 노린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_-)

 

제자 성희롱하고, 거액의 촌지 받고, 성적 조작하고.. 이런 교사들은 참 거시기하죠;

 

그런데 과연 이런 문제들이 '교원평가제'를 통해 걸러내 질 수 있는 '성격'의 문제들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희롱하고 성추행해도 일제고사 반대한 선생님들보다 징계수위도 낮고 금방 교단에 들어오는게 현실인데요 뭘 -_-.. 이런 선생님들을 교원평가제를 통해 걸러내겠다는 것은, 수학문제 푸는 걸 보고 '아 이 학생은 영어능력이 부족하구나'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저렇게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교사들에 대해선 징계수위를 강화하고, 학교운영위원회를 정말로 객관적이고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기구, 영향력있는 기구로 만들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교원평가제가 실시된다고 해서 촌지 받는 선생님과 성희롱 하는 선생님이 걸러지진 않는다는 말입니다-_- 평가가 수시로 실시될 리는 없고, 학기말에나 학년 말 정도에 실시될텐데, 3월초에 촌지 받고 성희롱 하고 이런 것들을 꾹 참고 있다가 7월쯤 가서 터뜨리란 말인가요? 아니죠 그건.

 

뭔가 초점이 자꾸 어긋나있습니다. 그러니 교총의 선언이 다분히 여론의식용이며, 정부에 아첨(?)하는 선언이 아닐까, 하는 씁쓸한 기분이 자꾸 드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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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줄 요약.

 

1. 난 평가를 찬성한다. 그 평가가 나의 교사생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야.

 

2. 하지만 교원평가가 성희롱 교사, 촌지수수 교사 등의 부적격 교사를 가려내는 수단인가? 그것은 아니다.

(2-1. 물론 완전히 관계가 없진 않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자습만 시킨다던지, 이상한 소리만 하고 진도 안나가는 교사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는 있겠지. 하지만 교원평가는 거기까지다. 성희롱 교사나 촌지 수수 교사를 걸러내는 수단이 아니다.)

 

3. 사회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못되먹은 교사들은-_-;; '민주적이고 독립적이고 영향력있는 '기구를 통해 높은 수위의 징계를 해야 마땅하다. 그런 '부적격 요인'들을 '교원평가제'로 걸러 낼 수 있으니 난 찬성이오~ 하고 있는 교총은... 정말로 교육을 생각한 선언인가, 아니면 여론과 정부의 눈치보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