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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후원금 내는 게 성추행보다 나쁜 일입니까

민군_ 2010. 5. 2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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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후 위원장은 "조직과 교육을 지켜야한다는 절박감으로 6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 비상 대의원대회를 소집해 전교조 모든 조직이 결연한 투쟁을 각오할 것이고, 대대에서 제안·결정하는 사업과 투쟁전술은 정부의 대응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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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언론의 기사 제목을 인용하자면, 2010년 5월 23일은 전교조 역사에서 '피의 일요일'로 기억될 만한 하루가 아니었나 합니다. 사립학교 교사 35명을 포함한 169명의 교사들이, 민주노동당에 가입하였다는 혐의로,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로부터 전면 해임·파면이라는 징계를 받게 된 것이죠. 

몇 가지의 이유로 이는 상당한 수준의 징계입니다. 첫째는 169명이라는, 1989년 전교조 합법화 이후 최대의 규모라는 점이고 둘째는 정직, 감봉도 아닌 파면과 해임이라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물론 지난 일제고사 사태 이후로 이번 정부가 파면, 해임정도는 눈 감고도 내린다는 걸 어느정도 눈치채긴 했지만, 정말로 이렇게 대규모로 징계 파티를 벌일 줄은 아마 짐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정말로,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킬 수 있는 교사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없다'가 정답일 것입니다.

'정치적 중립' 지킬 수 있는 교사는 존재할 수 없다

우선 제 얘기를 잠시 해 볼게요. 이 기사를 끄적이고 있는 저는 현재 초등학교 교사이며,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매월 일정 금액의 당비를 납부했던 적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대학생 때였는데, 아는 선배의 권유로 당에 가입했었어요. 하지만 임용시험 합격 이후 주변에서 보내오는 걱정어린 시선 및 소심한 제 성격 탓에, 결국 탈당을 했지요. 바로 국가공무법 65조 1항, '공무원은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라는 조항이 마음에 많이 걸렸던 탓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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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공무원법 제 65조 1항은 '공무원의 정당 가입'에 대해 금지하고 있다
ⓒ 로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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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습니다. 우리 법에서는, 일단 공무원의 정당 가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밖에도 타인에게 정당 및 정치단체 가입을 권유하는 것도 금지사항입니다. 만약 이번 사태로 징계를 받게 될 선생님들 중에 정당에 가입한 분이 계시다면 법을 어긴 것이겠지요. 굳이 민노당뿐만이 아니라 한나라당이건 민주당이건, 혹은 허경영 총재의 민주공화당이건 말이에요.

그런데 이 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왜 교사는 '정당'에 가입할 수 없는 건가요? 나의 신념과 정당의 정책이 맞는다면 가입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진짜 큰 문제는 수업 시간에 '편향된 생각'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듯 주입하는 것이겠지요. 정당에 가입했다고 해서, 혹은 가입하지 않았다고 해서 나의 생각과 신념이 더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정치적인 동물입니다. 정치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비정치적'일 수가 없지요. 4대강, 천안함과 같은 것들만 정치적인 것은 아닙니다. 당장 오늘 마트에 가서 구입하는 쇠고기와 돼지고기도 충분히 '정치적'일 수 있지요. 당장 6월 2일엔 선거가 있습니다.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선, 선거에도 참여 안 해야 하지 않을까요. 공무원이 신념에 따라 특정 정당 후보에 투표하는 행위, 이거 참으로 정치적이지 않습니까?

정치적 자유가 없는 공무원, 그리고 교사

어차피 정치하며 살아가는 건데, 공무원이기 때문에 정당 가입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럼 가입 안 하고 후원할까, 했더니 그러면 파면하고 해임하겠다고 합니다. 꾸준히 낸 후원금 몇 십 만 원이 한 집안의 가장이던 아버지의 목숨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의 일을 하는 공무원이고 교원이기 때문에 중립을 지켜야 한다'라는 주장엔 동의합니다. 그런데 남에게 강요하는 게 문제지, 자신의 생각대로 조용히 후원하는 것이 그렇게 큰 '범법행위'인가요? 

우리에게 '정치적 자유를 허락해 주세요'라고 외치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생각의 자유'를 허락해 달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공무원도 좋아하는 당에 후원금 낼 권리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그냥 속으로 생각하고 응원만 하라는 얘기인 건지, 참 답답합니다. 올바른 비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월드컵 응원도 혼자 속으로 '대~한민국' 외치면 뭐합니까. 박수 다섯 번 치고 고래고래 소리도 좀 질러줘야지요. 단, 축구 싫어하는 옆집 아저씨한테 항의 안 받을 정도로만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남에게 피해주거나 강요하지 않는 선에서 공무원의 정당 가입 및 후원금 납부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의 자유조차 없는 대한민국은 참 삭막한 나라 아닙니까? 공무원도 공무원이기 전에, 정치하며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좋아하는 팀 응원하며 살아갈 정도의 자유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소 사실'만으로 징계 여부 결정한 교과부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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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공무원, 교사탄압저지공동대책위원회 및 민생민주국민회의 주최로 열린 '공무원 및 전교조 공안 탄압 기자회견'에서 민변 권영국 노동위원장이 경찰의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수사 확대 방침과 관련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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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번 '피의 일요일'사태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현재 검찰은 전교조 교사들이 민노당에 '후원금'을 낸 사실을 바탕으로 '당에 가입한 것'으로 간주하여, 그들을 기소한 상태입니다. 실제로 그 중에 당원인 교사가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더 큰 문제는 아직 법원의 판결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해임과 파면'이라는 징계 수위가 결정되었다는 것이죠. '무죄 추정의 원칙'따윈 휴지조각이 되 버린 듯합니다.

4대 교원비리(성적조작, 금품 수수, 성추행, 폭력)의 경우는 법원 판결 이전에 교단에서 배제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결국 지난 일제고사 반대, 시국선언, 그리고 이번의 민노당 후원금으로 인해 해임·파면된 교사들은 '성추행 교사보다 더 나쁜 X'이라는 얘기가 되는 건지요. '일단 억눌러놓고 보자'라는 정부의 태도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조금만 서로서로 여유로울 수는 없는 노릇인지요. 강압과 폭력, 온갖 기소와 징계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이제 갓 2년차에 접어든 헌내기 교사인 저는 너무나 혼란스럽습니다. 잘못된 온정주의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보다 '관용'의 정신이 더 필요하지 않나 싶네요. 

해임과 파면으로 교단에서 '쫓겨나신' 선배교사님들이 하루 속히 교단으로 돌아오셔서 참교육의 희망을 다시 피우실 수 있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그리고 저 '전교조'교사 아닙니다. 전 현재 교총소속이에요. 저보고 '좌빨 전교조 교사 물러가라'라고 하시면 곤란합니다.